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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는 군사 반란이었을까? 4 - 정승화의 수상한 행적이 드러나다

by 개인주의자 2024. 10. 21.

10월 27일 새벽 2시 김재규는 보안사령부에 의해 체포되어 서빙고에 있는 수사분실로 연행되었습니다. 연행된 지 두시간 후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수사하는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매우 충격적인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재규, 경악할 사실을 털어놓다

김용삼 기자의 강의에서 27일 새벽 두시 경 서빙고 수사분실로 연행되온 김재규는 수사받던 중 새벽 네시 경 라디오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동시에 계엄사령관으로 정승화가 임명되었다는 말을 듣자 너무 기뻐했다고 합니다.

 

김재규는 매우 기뻐하면서 자신을 수사학고 있는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매우 경악할 만한 사실을 자랑하듯 털어놨습니다. 그 내용을 보자면

 

내가 정승화를 범행장소 옆에 대기시켜 놓았고, 정승화와 육본 벙커로 함께 이동, 저격현장에 김계원도 함께 있었다.

김용삼, 김용삼의 근현대사 산책 18 - 혼돈의 군부 중에서

 

이는 이미 내각에서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한 후 였습니다. 계엄사령관은 비록 부분계엄이었을 지라도 매우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두환이 본부장으로 있는 합동수사본부가 계엄 기관 중 하나로서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기관이 대통령 시해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의 지휘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김재규, 기세등등 안하무인이 되다

김재규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처럼 완전히 기세등등 안하무인이 되어 자신을 수사하는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바뀌었다. 전두환이 오라고 해!" - 김용삼, 김용삼의 근현대사 산책 18 - 혼돈의 군부 중에서

 

이 태도에 큰 충격을 받은 이학봉은 상관인 전두환 본부장에게 김재규의 진술을 보고했다고 합니다. 전두환 본부장은 정승화를 떠보기 위해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받은 직후 대통령 시해가 일어난 곳이 청와대 궁정동 안가였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정승화는 시치미를 뚝 떼며

 

"그런 곳이 있었나?" - 김용삼, 김용삼의 근현대사 산책 18 - 혼돈의 군부 중에서

 

라고 하며 마치 전혀 몰랐다는 듯 소위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고 합니다.

 

김재규

 

정승화와 김계원을 수사하라!

이윽고 이학봉 수사국장은 자신의 상관인 전두환 본부장에게 김계원과 정승화를 구속수사 하자고 건의했습니다. 건의에 따라 김계원은 정승화에게 보고하고 바로 구속을 했으나 정승화에 대해서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고 합니다.

 

1)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계엄사령관을

    구속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2) 정승화를 포함한 정승화 계열에 있는 지휘관들이 대통령 시해에 가담되어 있을 경우

    정승화를 구속했을 때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3) 보안사에 반란군을 막을 병력이 있는가? 최규하 권한대행이 그 반란세력과 맞설

    의지가 있는가?

 

위의 세가지 사항이 전두환 본부장의 고민 내용이었습니다. 이에따라 전두환은 정승화에 대해서는 극비로 내사하기로 하고 10월 28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정승화에게 시해 사건 당일에 대한 자술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정승화는 자신이 정식으로 참고인으로 조사받겠다고 했습니다.

 

정승화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이 계속해서 밝혀지다

이 부분은 전 포스팅인 12.12는 군사 반란이었을까? 3과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김재규를 조사하면서 정승화가 시해당일에 행했던 충격적인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났습니다. 그 사실들을 정리하자면

 

1) 대통령 시해 후 김재규와 함께 육군본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병력동원에 대해 논의

2) 육군본부 도착 후 국방장관과 각 군 수뇌부에 연락하여 비상소집을 하고 군 배치장소를 김재규와 논의

3) 병력동원 후 김재규에게 그 사실을 보고함

4) 이재전 경호실 차장에게 경호실 병력을 출동하지 말라고 지시한 이유

5) 경호실 병력 출동을 봉쇄하기 위해 전성각 수경사령관에게 청와대 포위 지시

6)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국무회의 주재장소를 청와대가 아닌 육본에서 하자고 건의

김용삼, 김용삼의 근현대사 산책 18 - 혼돈의 군부 중에서

 

위와 같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실들을 볼 때 누가봐도 정승화는 김재규와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들이 매우 심각한 것이지만 4번 경호실에 명령한 것과 5번 수경사령관에게 청와대를 포위하라고 지시한 것은 지시할 권한이 없는자가 월권행위를 한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투여단급 병력을 출동시키려면 국방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승인없이 무단으로 지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군 통수권과 전혀 관련없는 중앙정보부장의 요구로 계엄 선포 전에 병력을 동원한 심각한 월권행위 였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병력이동 후 국방장관에게 사후보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승화

 

정승화,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를 방해하다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에 오르고나서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대놓고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위에 김계원을 정승화에게 보고한 후 즉시 구속했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정말 구속이 필요하냐고 하면서 승인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가 진술한 내용을 보여주자 할 수 없이 승인했다고 합니다.

 

또한 정승화는 사건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해 엉터리로 진술하는가 하면 불리한 대목은 위압적으로 얼버무리기도 하고 작성된 진술조서에 날인도 거부했으며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부분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의 증언을 들어보면

 

전 본부장은 정 총장이 시해 사건과 관련해 자신도 조사를 받을 테니 수사관을 보내 달라고 해서 보냈더니 진술 내용을 몇 번이나 번복하는가 하면 조사가 끝나 합수부로 넘어온 진술서를 다시 가져오라고 해서 고치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다고 했다. - 노태우, 노태우 회고록 상권, 235page

 

이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찾아갔을 때 전두환 본부장이 자신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정승화는 합동수사본부의 합법적인 수사를 방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여러 상황이 점점 심각해짐으로써 정승화를 체포, 강제연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포스팅으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