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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는 군사 반란이었을까? 3 - 10.26사건의 전말

by 개인주의자 2024. 10. 19.

12.12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10.26사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10.26사건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12.12사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10.26사건의 전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먼저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10.26사건 타임라인'이라는 표를 첨부해 드리겠습니다.

 

 

사건의 시작과 김재규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오후 4시 10분 경, 김재규는 차지철로 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 내용은 당일 저녁 청와대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연회를 할 생각이니 준비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 요청을 받은 김재규는 차지철과의 전화통화가 끝나자 바로 정승화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 궁정동 안가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이 개최한 연회와 동시간에 정승화가 연회장에서 50~60m 정도 떨어진 건물에서 중앙정보부 차관하고 식사를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사건현장 약도

 

김재규, 대통령을 시해하다

박정희 대통령, 차지철, 그리고 가수 심수봉씨와 청와대 직원으로 보이는 신재순씨와 함께 청와대 궁정동 안가에서 연회를 하던 중 갑자기 김재규가 차지철을 두고 "이런 쓰래기 같은 놈을 곁에 두시니까 문제가 생기는거 아닙니까"하더니 자신의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처음 한발을 차지철에게 쏘고 다음 한발을 대통령에게 쐈습니다.

 

그리고 또 한발을 대통령에게 쏘려 했지만 자신의 총이 고장나서 쏠 수 없게되자 자신의 중앙정보부 요원의 총을 빌려 가슴에 총을 맞고 엎드려있던 박정희 대통령 뒤통수에 대고 확인사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같이있던 모든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일제히 총을꺼내 대통령 경호실 직원들을 사살했습니다. 그러니 당시 연회장에서 수십발의 총성이 울렸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김재규와 정승화, 용산 육군본부로 이동하다

김재규는 대통령을 시해한 후, 피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정승화가 대기하고 있던 곳으로 와서 정승화와 승용차를 타고 당시 용산에 있던 육군본부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면서 차안에서 두 사람이 나눈대화 내용이 이미 수사기록으로 있습니다.

 

이 대화 내용에서도 김재규의 심각한 월권행위가 있는데 이 부분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습니다. 정승화는 왜 김재규와함께 육군본부로 이동했을까요? 매우 미심쩍은 행동임이 분명합니다.

 

정승화, 국군의 주요 지휘관들에게 전화를 걸다

김재규와 함께 용산 육군본부에 도착한 정승화는 도착하자마자 각 군 주요 지휘관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누구에게 무슨 내용으로 전화를 걸었을까요?

 

상황실로 간 정승화 총장은 국방장관, 공군총장, 해군총장, 육군 제1군, 제3군 사령관 등 주요 지휘관에게 전화를 걸라고 명령했다.

중략

정 총장은 3군사령관 이건영 중장에게 "부엉이 둘을 발령하고 제20, 30, 33사단을 출동준비를 시켜두라"고 지시했다. 제 9공수여단장에게는 "준비가 되는대로 육군본부로 출동하라"고 명령했다. 제1군사령관에게도 부엉이 둘을 발령하라고 시켰다.

중략

(전성각 수도경비사령관에게) "지금부터 내 명령 이외는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되오. 부대를 완전히 장악하시오. 출동준비를 시켜 놓고 나한테 오시오."

조갑제,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 202~205page

 

또한 이재전 대통령 경호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호실의 병력출동을 금지시키고 그리고 전화를 받고 온 전성각 수도경비사령관에게 수경사 병력으로 청와대를 포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승화가 육군참모총장인데 이 내용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승화

 

국무위원들이 소집되다

육군본부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김계원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시신을 대통령 전용병원인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그후 다시 청와대로 돌아온 김계원은 총리이하 국무위원에게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전화했고 전화를 받은 최규하 총리이하 장관들이 청와대로 모였습니다. 청와대로 최규하 총리가 들어오자 김계원은 대통령이 유고상태가 되었으니 당신이 대통령권한대행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김계원은 최규하 총리에게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시해당했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김계원은 김재규가 일부러 쏜게 아니라 만잔장에서 김재규와 차지철이 다투다 잘못 발사된 총에 맞은 것이라고 허위보고 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가 육군본부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국무위원들과 김계원이 전부 육군본부로 가게됩니다. 그래서 타임라인에서 보듯 9시 30분 경 육군본부로 국무위원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계엄령 선포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다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는 국무위원들에게 대통령이 유고상태가 되었으니 계엄령을 선포할 것을 권유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대체 대통령 유고상태가 어떤 상태인데 계엄령을 선포하냐고 김재규에게 되물었고 김재규는 대통령이 시해당했다는 말은 하지않은채 계속 유고상태니 무조건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국무위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현확 부총리가 나서 "우리 국무위원들도 계엄령 선포사유가 납득이 안되는데 국민들에게 계엄령 선포사유를 뭐라고 합니까?" 라고 소리지르며 김재규에게 따졌습니다. 이 장면을 본 김계원이 드디어 실토를 하게됩니다.

 

김계원, 대통령 유고상태를 밝히다

국무위원들과 김재규간에 벌어지는 설전을 본 김계원은 김재규는 틀렸다 싶었는지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대통령은 현재 시해당하셨으며 김재규가 쏜 총에의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실토했습니다.

 

노재현, 김재규 체포를 지시하다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이 시해당했으며 범인은 김재규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노재현 국방장관은 바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김재규를 체포해서 연행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의해 김재규를 잘 모시라는 전혀 다른 지시를 받게됩니다.

 

두 상관으로 부터 상반된 지시를 받은 전두환은 군의 전통에 따라 가까운 상관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김재규를 서빙고에 있는 수사분실로 연행한 것이 아니라 손님 접대용인 중앙정보부 정동분실로 연행한 것입니다.

 

이후 다시 명령을 받고 전두환은 김재규를 조사하기 위해 서빙고에 있는 수사분실로 연행했습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다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시해당했다는 것을 안 국무위원들은 드디어 10월 27일 새벽 4시 경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에 부분계엄을 선포했고 계엄사령관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습니다.

 

문제는 정승화가 대통령 시해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임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것이 12.12로 가는 도화선이 되고 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