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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는 군사 반란이었을까? 1 - 시리즈를 시작하며

by 개인주의자 2024. 10. 15.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서거하신 후 1980년 9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할 때 까지 약 1년간의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정말 격변기를 거쳤습니다. 당시는 전두환이 군권을 찬탈했다는 12.12 사태 부터 계엄령 발령 그리고 5.18로 이어지는 격변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벌어진 여러 사건들은 많은 왜곡과 거짓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한 중간발표를 하는 중

 

한 사건도 떼어놓고 볼 수 없다

10.26, 12.12 그리고 5.18과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과정은 모두 이어져 있습니다. 12.12는 10.26의 결과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10.26에 대한 이해 없이는 12.12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2.12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5.18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약 1년 동안 벌어진 세 사건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시리즈 초반 글에 12.12는 군권을 찬탈한 반란사건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시리즈를 통해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왜 그렇게 전두환을 왜곡하고 지우려할까?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시리즈 마지막 글에 저는 분명 1982년생 이기 때문에 전두환 정부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제가 5.18에 대해 전두환이라는 사람은 뭐라 말할까? 궁금해서 전두환 회고록 1권을 봤고 내친김에 2, 3권 까지 봤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전두환 정부가 7년이 넘는 기간동안 집권하면서 해 놓은 일이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국민들은 전두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 수많은 공들은 전부 묻 혀버리고 오로지 5.18 주범, 학살자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공은 철저히 지워지고 과만 부각되다 못해 하지도 않은 것까지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입니다.

 

12.12와 10.26에 관련된 책이 거의 없다

저는 이번 글을 쓰기위해 관련 서적들을 조사하고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책들 뿐만 아니라 김용삼 기자의 강의 내용도 참고하여 글을 쓰고자 합니다. 제가 참고할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2.12 쿠데타와 나 - 장태완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 - 정승화

 

12.12와 미국의 딜레마 - 존 위컴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 - 조갑제

 

5.16과 12.12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 - 이만섭

 

당신은 외롭지 않다 - 이순자

 

김재규는 의인도 영웅도 아니다 - 남정옥

 

12.12 - 이계성

 

전두환 회고록 3권

 

신현확 증언록

 

전두환 회고록 1권도 참조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10.26, 12.12, 5.18에 대한 관련된 내용이 나온 1권을 구입할 수도 빌릴 수도 없게 되어있어서 직접 참조는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12.12가 정말 군사반란인가?

12.12는 정말 군사반란이었을까요? 12.12사건을 공부하다보면 군사반란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설명이 안되는 사건이 많습니다. 그 사건들을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승화 연행과 조사의 필요성을 대통령에게 보고함

정승화를 자택에서 연행한 12.12사건이 정말 군사반란이었다면 정승화 연행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군사반란을 재가해달라는 요청이었을까요? 아니면 대통령을 핫바지로 보고 내가 군사반란 일으킬테니 막아볼테면 막아보라고 배짱을 부린 것일까요?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하는 군사반란도 있나요?

 

2) 최규하 대통령의 고집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의 연행과 조사에 대해 보고하자 국방부 장관 배석하에 재가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럼 최규하의 재가는 무엇으로 해석해야 합니까? 당신의 군사반란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재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까?

 

3) 30경비단 모임

전두환은 군 장성들을 30경비단에 모이게 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두고 좌파쪽에서는 군사반란을 계획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모인 사람들을 보면 정승화와 친하고 동시에 수도권쪽에 있는 부대들을 관할하고 있는 장성들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군사반란 대상자가 정승화인데 정승화와 친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군사반란을 계획한다는게 말이 앞뒤가 맞을까요? 그렇다면 전두환은 이 모임에 대해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시리즈를 통해 차차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4) 노재현 국방장관의 군 출동 금지명령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하러 간 이후부터 약 10시간 동안 노재현 장관은 연락이 두절된채 행방불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0시간 뒤에 나타나서 정승화 연행과 조사에 대한 재가를 하고 전화로 전 군에 병력 출동에 대한 전면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체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국방부 장관도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허락하고 방치한걸까요?

 

5) 정승화 후임 계엄사령관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되자 후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이희성 장군이었습니다. 이희성 장군은 계엄사령관으로서 5.18당시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그런데 이희성 장군은 정승화 라인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전두환이 정승화를 체포, 연행하므로서 군권을 장악했다면 정승화의 후임 계엄사령관으로 정승화 라인에 있던 이희성 장군이 임명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6) 반란군 진압

시리즈를 통해 차차 알아보겠지만 군 병력을 먼저 동원한 쪽은 바로 장태완 수경사령관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어긴 반란군으로 결론내리고 진압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어긴 반란군을 진압한 것이 어떻게 군사반란이 되는 것입니까?

 

7) 12.12사건 당시 부인 이순자 여사의 행동

이순자 여사의 회고록 '당신은 외롭지 않다'를 보면 12.12당시 자신은 한국외대 영문과에 편입시험을 봤다가 낙방했다고 합니다. 또 그 당시 연세대 어학당을 다녔다고 합니다. 남편이 군권을 찬탈할 거사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데 부인이 한가롭게 편입시험응시와 어학당 출석이 가능했을까요?

 

좌파들이 쓴 책들을 보면 위 내용들을 거의 누락하고 있거나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본인들도 설명이 안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이 부분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8) 정승화 체포조에 있던 한 사람

정승화의 자택으로 체포하러 갔던 네 사람 중 한사람이 바로 우경윤 대령이었습니다. 김용삼 기자에 의하면 우경윤 대령은 당시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을 하고 있었고 정승화가 신임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육본 범죄수사단은 보안사령부에 속해있는 부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만약 정승화 체포와 연행이 정당성이 없었다면 또 만약 이것이 군사반란이었다면 정승화의 신임을 받고있던 우경윤 대령이 체포조에 포함되었을까요?

 

정승화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