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한반도 남북 분단의 역사 2 - 구한말(대한제국)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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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북 분단의 역사 2 - 구한말(대한제국) 시기

by 개인주의자 2024. 3. 18.

제가 한반도 남북 분단의 역사 시리즈의 첫 번째인 한반도 남북 분단의 역사 1 - 임진왜란 시기에서 기술했듯이 우리는 현재 분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분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분단되기 이전, 현재와 같은 이유로 두 번이나 외세에 의해 분단될 뻔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두 번째 분단될 뻔했던 역사 중에 두 번째인 구한말(대한제국) 시기에 일어났던 일을 다루고자 합니다.

 

한반도 남북분단의 역사 시리즈의 첫번째 한반도 남북 분단의 역사 1 - 임진왜란 시기를 보고싶다면 빨간 글씨를 클릭하세요.

 

한반도의 지정학

이번 포스팅에서도 역시 한반도의 지정학에 대해 간략히 서술해야 이야기가 풀립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땅에서 있었던 일들을 분석할 때 꼭 염두해야 하는 것은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회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절대 이야기가 풀리지 않을뿐더러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반도의 지정학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의미를 참조해 주시고 빨간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구한말(대한제국) 시대 국제정치 상황의 간략한 배경설명

영국과 러시아는 1877년 크리미아 전쟁 발발 때부터 패권전쟁을 해왔습니다. 러시아는 해양으로 나오고자 했고 영국은 그런 러시아를 막는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지리적 지정학적으로 대양으로 나오기 매우 힘든 거의 내륙국의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다면 러시아가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1 - 지리적 조건을 참조해 주시고 빨간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러시아는 러시아가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1 - 지리적 조건 에서 보시듯 부동항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계속 남하려 했지만 영국에게 막혀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계속 동진하여 현재의 극동지역(연해주)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게 와서 보니 한반도라는 천혜의 지역이 있었고 한반도를 손에 넣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칩니다.

 

일본, 영국편에서서 러시아를 막다

일본은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영국에게 지고 나서 실상을 깨닫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여 빠르게 개혁작업에 돌입하고 세계정치무대에 등장합니다. 당시 일본은 패권국 영국의 편에 서서 극동에서 러시아를 막는 일을 합니다. 거기다가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공포의 기억 때문에 자신과 적대하는 세력이 한반도를 차지하면 자신들이 망한다는 즉 한반도는 일본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한반도를 차지하지 못하게 거의 목숨을 걸고 막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정학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면 일본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을 참조해 주시고 빨간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러시아와 일본, 만주와 한반도를 놓고 각축을 벌이다

자 이제 배경설명이 끝났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한반도 분할 안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하자면

 

1. 러시아의 삼국간섭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으로 부터 요동반도를 할양받습니다. 이 때문에 만주에 일본이 영향력을 확장할 것 같은 낌새가 보이자 러시아는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에게 압력을 가하여 요동반도를 놓게 만듭니다. 이를 삼국간섭이라고 합니다.

 

2.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

러시아가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1 - 지리적조건 에서 보시듯 러시아는 바다로 나오기가 매우 힘들고 또 유럽 쪽에서 극동까지 바다로 오기가 매우 멀고 힘들기 때문에 육상을 관통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1891년 3월부터 착공을 합니다. 따라서 일본도 러시아도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점을 마산이나 부산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두 나라는 한반도에서 치열한 정보전에 돌입합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 붉은선

 

 

3. 만주에서의 러시아 우위

의화단 사건으로 인하여 세계 여러나라의 군대가 중국으로 출병을 하고 진압했을 때 러시아는 만주로 수십만의 군대를 파견하여 만주에서의 러시아의 지위를 다집니다. 만주를 차지하기 일보직전의 러시아는 분명 한반도도 차지하기 위해 군대파견할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러시아에 한반도 분할안을 제시하다

당시 일본보다 국력이 쎘던 러시아가 만주에서 우위를 갖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며 종점을 마산이나 부산으로 하려고 하자 일본은 러시아에게 한반도 분할 안을 제시합니다.

 

1. 1896년 5월 일본이 제안한 한반도 분할안

조선국내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노 양국의 군대를 파견할 경우 양국군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일방은 남부로 일방은 북부로 조선국내를 구획하여 주둔토록 하고 양군 주둔소에는 상당한 거리간격을 설치하자

- 한반도 분할의 국제정치학 - 국제정치논총

 

위의 인용문에서 일본과 러시아에게 제안한 구획선은 39도선 또는 38도선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아직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국력이 세다고 생각했던 러시아는 일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러시아, 일본에게 한반도 분할 안을 제시하다

러시아는 1898년 북경에서 청나라와의 조약으로 여순과 다롄을 25년 동안 조차했습니다. 이에 따라 구미열강도 청나라의 영토를 각각 조차했으며 따라서 러시아는 일본과 구미열강의 견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어쨌든 드디어 러시아가 그렇게 염원하던 부동항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만주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지게 되고 이 때문에 반대로 러시아가 일본에게 한반도 분할 안을 제안합니다.

 

여기서 제안된 분할 경계선은 39도선으로 평양의 대동강과 원산을 있는 선입니다. 이 안을 러시아가 제안한 것은 여순과 다롄의 점령의 인정과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우위를 인정하는 일종의 교환전략이었습니다.

 

- 일본의 러시아 제안 거절

일본은 러시아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북위 39도선 이북은 한반도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며 일본의 이익에 극히 중요한 평양과 원산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한만국경에 중립지대를 설치하자고 역제안하며 한반도 분할 안은 없던 것으로 됩니다.

 

1905년 러일전쟁으로 모든 것이 끝

1905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퇴장했습니다. 일본의 국력이 한반도 전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고 청일전쟁으로 청나라가, 러일전쟁으로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퇴장하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정리됨과 동시에 민비가 러시아 편을 들다가 일본에게 살해당했음에도 아직도 정신모차린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여 서구열강과 일본에게 조선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면서 곧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성경말씀에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한반도 남북 분단의 역사 1, 2에서 서술했듯이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회랑이기 때문에 양 세력은 한반도의 일부를 가짐으로 해서 완충지대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구한말(대한제국) 때에도 일본과 러시아는 한반도의 전부 안되면 일부라도 손에 넣어 완충지대를 갖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로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대륙세력의 완충지대이고 남한은 미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의 완충지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대한민국주도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약화되어야 합니다.

 

남북통일의 키포인트를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한반도의 통일이 가능한가? 참조해 주시고 빨간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