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5 - 경제분야 3 : 금융민영화와 수입자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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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5 - 경제분야 3 : 금융민영화와 수입자유화

by 개인주의자 2024. 8. 2.

전두환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때려잡는 동시에 여러 공공부문, 특히 국책은행들을 민영화 시켰습니다. 뿐만아니라 수입자유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 정책들 역시 개발도상국 경제에서 고도의 선진국 경제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정책들이었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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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민영화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는 사실 박정희 정부때 부터 실행되어 왔습니다. 특히 박정희 정부 말기때 전 포스팅에서 말씀드렸듯 정부 주도정책의 한계로 인해 심각한 비효율이 드러나자 민영화 정책을 펴 왔습니다. 전두환 정부 역시 박정희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이어받아 성실히 이행했습니다.

 

그렇다면 박정희 · 전두환 양 정부에서 어떤 곳을 민영화 시켰는지 알아볼까요?

 

 

박정희 정부때의 민영화는 대개 교통이나 중공업 분야의 민영화로 볼 수 있다면 전두환 정부에 이르러서는 금융부문이 많이 민영화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두환 정부의 금융민영화

금융부문의 민영화는 그 의미가 매우 깊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관치금융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국가가 금융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독재국가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 우리는 관치금융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단순 독재국가의 경우와는 다른 경우입니다.

 

박정희 정부의 관치금융과 단순 독재국가의 관치금융의 차이

1) 박정희 정부의 관치금융

박정희 정부는 유신 이후 대통령 직접선거제를 간접선거제로 바꾸면서 독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의 관치금융은 단순히 독재를 하기위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정부가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산업화 자금이 모자른 마당에 아무에게 그리고 아무데나 자본을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사업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산업화에 근간이 되는 인프라 건설에 선별적으로 자금을 투입했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관치금융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2) 단순 독재국가의 관치금융

독재국가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그 나라의 독재자의 이념이 공산주의이든 아니든 모든 독재자는 단 한가지의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독재체제의 영속'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의 영속을 위해 모든 일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관치금융입니다.

 

금융은 산업화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국영이든 민영이든 모든 기업들은 경영활동에 있어 금융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초기 설립부터 기업이 운영되는 동안 필요한 모든 자금을 조달하는데 있어 금융이 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재정부가 금융을 관치로 해서 딱 잡고 전권을 휘두르면 전 산업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제가 커지고 복잡하게 되어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금융민영화가 필요함에도 이 독재정권들은 금융민영화를 시키지 않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도 경제규모가 커져 세계 2위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금융은 관치금융입니다.

 

전두환 정부의 금융민영화의 의미

전두환 정부는 출범 초기 부터 금융민영화를 실시해서 위에 표에 보시는대로 4개 국책은행을 민영화 시켰습니다. 여러분들은 겨우 4군데를 민영화 한걸 가지고 공이라고 할 수 있느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나 민영화, 특히 금융민영화는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두환 정부들어 처음 금융민영화를 실시함으로써 경제운용의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급속하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때문에 전두환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규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정부의 권력을 민간으로 넘김으로서 독재정부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대표적 국책은행인 중국공상은행

 

전두환 정부의 수입자유화

왜 수입자유화가 필요했는가?

전두환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수출은 선, 수입은 악'이라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항상 '국산품을 애용하자'라는 표어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은 처음에는 매우 유용하고 좋은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 이러한 정책은 곧 한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어떤 산업을 처음 시작하면 그 산업을 이른바 '유치산업'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산업이라는 뜻입니다. 어른이 어린아이를 잘 자라도록 보호하듯이 산업도 시작 초반에는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산업이 어느정도 자라서 일정수준의 역량을 갖게되면 이 보호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느정도 컷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보호를 하게되면 이 아이는 온실속의 화초처럼 매우 연약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산업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온실속에서 안주하게 만들어 더 이상의 발전이나 품질 향상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의 측면에서도 방만경영이 판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일거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온실에 해당하는 보호정책을 걷어내고 비바람을 맞딱드리게 만드는 수입자유화 정책인 것입니다.

 

전두환 정부, 수입자유화 정책의 시동을 걸다

그렇다면 전두환 정부가 어떻게 수입자유화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전두환 대통령 본인의 생각과 의지가 가장 컷고 동시에 그가 기용한 경제팀의 구성원들의 성향이 개방화였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선생이라고 불렸던 김재익 수석부터 강경식 재무장관, 김기환 KDI 원장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강경식 재무장관은 수입관세제도 개편을 했고 결과적으로 관세율을 84년부터 88년까지 단계적으로 낮추는 것을 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수입자유화 정책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국내시장만 파먹는 내수전용산업은 더 이상 보상해선 안된다. 개방을 통해 외국기업과 경쟁을 시켜야 한다. 그 경쟁에서 도태되어도 할 수 없다. - 이장규,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130page

 

또한 전두환 대통령 본인도 수입자유화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김기환 KDI 원장의 회고입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가장 염려스러웠던 것은 혹시 신군부가 버마처럼 문을 걸어 잠그는 쪽으로 정책을 펴 나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권 초부터 김재익 경제수석이나 강경식 재무장관 등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을 만날 때 마다 쇄국 정책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대통령은 개방 정책에 흔쾌히 동의했고, 오히려 주위의 반대를 적극적으로 막아주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 이장규,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131page

 

수입자유화 정책, 극심한 반대에 부딧치다

- 정부부처끼리의 반대

여러분도 예상하셨겠지만 당시 수입자유화 정책은 안밖으로 극심한 반대해 부딧쳤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산업전반을 관할하는 상공부와 해당 부문 국책연구소인 산업연구원으로 부터의 반대였습니다.

 

특히 산업연구원은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국제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마당에 수입 개방을 서둘면 안된다" 라고 했으며 급기야 재무부와 상공부가 맞붙으며 강경식 재무부 장관은 "수입자유화 정책이 절실하다"라고 말하자 김동휘 상공부 장관은 "성급한 수입자유화는 국내 산업을 망친다"라고 맞받아 쳤습니다. 이렇게 정부 안에서도 반대가 극심했었습니다.

 

- 언론과 기업의 반대

여기에 언론까지 가세해서 '미제 홍수, '수입품 봇물 터져' 등의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업도 당연히 반대하면서 '과자시장이 개방되면 국내 기업 다죽는다', '외국 햄버거가 들어오면 국내 햄버거 기업 다죽는다'는 소리를 해댔습니다.

 

- 반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전두환 정부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여러번의 개방정책을 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 정부 때 한일 문화개방정책, 노무현, 이명박정부의 한미 FTA가 대표적이었습니다.

 

한일문화개방때 일본문화에 우리문화가 전부 죽는다는 말이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반대로 우리문화가 일본을 석권해버렸습니다. 일본에는 겨울연가 이후 한류가 수차레 불었고 현재 일본 젊은 여성들에게 한국은 선망이 되었습니다.

 

한미 FTA 협정을 체결할 때도 멕시코 예를들면서 우리가 미국에게 잠식당한다고 난리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습니까?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이 일방적인 손해를 본다며 한국에 협정의 개정을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남북의 경제차이를 만든 개방정책

 

전두환 대통령, 수입자유화 반대론을 꺽어버리다

기업과 언론이 죽는소리를 내자 전두환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일갈하면서 반대론을 박살냈다고 합니다.

 

"국내 시장에서 수입품과 경쟁 안 되면 해외에서 생존 불가능. 생존하려면 품잘과 디자인을 개선하고 원가를 낮추라".

김용삼, 서울의봄 영화 속 전두환은 어떻게 왜곡되었나? 전두환의 업적, knl 강의 중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수출이 국가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우리 상품을 팔기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외국상품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기업에게 유리한 국내시장에서도 외국제품과 경쟁이 안되는데 수출한다는게 말이 되지않습니다.

 

또한 국내기업들은 외국에 신제품을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전 국내시장에서 테스트 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국내시장에 출시해본 후 외국기업의 제품과 경쟁우위에 선다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