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7 - 산림 녹화와 에너지 정책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7 - 산림 녹화와 에너지 정책

by 개인주의자 2024. 10. 3.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6까지 이승만 정부가 했던 경제정책의 국내 · 외적인 기초를 알아봤습니다.  이번 포스팅 부터는 이승만 정부가 했던 경제정책을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시리즈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1 - 시리즈를 시작하며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2 -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 · 경제 사상의 기초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3 - 경제정책의 국내적 기초 1 - 교육 혁명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4 - 경제정책의 국내적 기초 2 - 토지개혁과 사유재산제 확립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5 - 경제정책의 국내적 기초 3 - 법과 제도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6 - 경제정책의 국외적 기초 - 미국패권질서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8 - 제철소 건설과 공업화 정책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 9 - 국가적 경제개발계획의 원조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산림녹화와 에너지, 무슨관계?

여러분이 제목에서 보시듯 산림녹화와 에너지 정책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왜 일까요? 먼저 당시 우리나라의 산이 나무하나없이 벌거벗은 이유가 바로 에너지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밥을 지을 때도 난방을 할 때도 아궁이에 나무를 태워 그 에너지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산림녹화를 하고 싶어도 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산림녹화가 될 수 없습니다. 당장 살기위한 에너지 문제로 모든 국민들이 산에 올라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승만 정부는 더 진보된 에너지를 얻기위해 먼 훗날 미래에 이루어질 한 방식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부분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산림녹화는 박정희 정부만?

많은 분들이 산림녹화 하면 박정희 정부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가 산림녹화에 성공한 이면에는 이승만 정부때 실행했던 여러 정책들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 태백산 종합개발계획

이승만 정부는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원을 강원도 산악지역에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는 석탄(무연탄)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부는 정인욱이 제안한 태백산 종합개발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인욱이 처음으로 태백산 종합개발계획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던 때와 부서는 1947년 미군정 상공부였습니다. 그럼 그게 제안한 태백산 종합개발계획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그의 제안은 태백산 일대, 국내 4대 지하자원(석탄, 철광, 중석, 금)을 비롯해 수백 종의 광물이 매장된 정선-삼척-강릉을 잇는 삼각지대를 대대적으로 개발한다는 걔획이었다. - 김용삼,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 86page

 

태백산 종합개발계획 대상지

 

저는 위의 인용문에서 말한 4대 광물중에서 석탄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나머지 광물도 중요하지만 에너지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석탄이기 때문입니다. 정인욱이 제안한 태백산 종합개발계획에는 단순히 광산개발 뿐만 아니라 광산에서 캐낸 자원들을 옮길 수 있는 교통시설에 관한 계획도 있었습니다.

 

태백산 개발을 위해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철도와 도로의 부설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중략

이승만은 정인욱의 구사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하여 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최고 권력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배경으로 영암선 철도 건설공사가 시작된 것이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4월이다.

 - 김용삼,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 86page

 

그렇다면 영암선 철도는 왜? 만들까요? 그리고 어디를 연결하는 철도노선일까요? 영암선은 경북 영주와 강원도 태백시 철암을 잇는 철도입니다. 먼저 영암선이 어디에 만들어지는 노선인지 지도를 보겠습니다.

 

영암선 철도 - 적색

 

- 어러움이 많았던 영암선 철도의 공사와 개통

 

영암선 철도는 수도권 및 영남으로 향하는 중앙선(청색)과 철암선(흑색)을 잇는 철도입니다. 영암선이 완공되면 태백산맥을 동서로 횡단하는 노선이 생김으로서 태백산 쪽에서 캐낸 4대 광물을 수도권 및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철도노선이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1949년 4월 8일 영주에서 철암까지 연결하는 영암선 철도의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노선의 길이는 86.4km로 긴 편은 아니었지만 노선이 지나가는 곳이 매우 험준하여 매우 어려운 공사였다고 합니다. 이로인해 석탄을 캐서 연탄으로 만들어 각 가정에 공급할 가장 기본적인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영암선 철도를 공사하던 중간에 6.25 전쟁이 터져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재개되어 1955년 12월 31일 영암선이 개통되었습니다.

 

- 박정희 정부의 산림녹화는 영암선 때문에 가능했다

이승만 정부때 여러 어려움을 딛고 태백산맥에서 캐낸 석탄을 운송할 철도노선들을 개통함으로써 박정희 정부 들어 본격적인 연탄보급과 함께 산림녹화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 원자력을 시작하다

얼마전 우리나라가 원전 강국인 프랑스를 제치고 체코 원전건설 수주를 따냈습니다. 전 정부에서 탈원전을 한다며 원전생태계를 완전 박살냈는데 이번 수출로 인해 다시 생태계가 부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최초로 원자력에 투자하기 시작한 정부가 이승만 정부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 북한, 갑자기 전기를 끊다

해방 후 남한지역에는 발전소가 없어 전기의 자체생산이 전무했었습니다. 일제가 자신들의 정책에 따라 지하자원이 많고 만주를 비롯한 대륙과 가까운 북한지역에 여러 공장들을 지었습니다. 동시에 공장에서 사용할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여러 수력, 화력 발전소들을 북한지역에 지었습니다. 압록강에 있는 수풍댐이 바로 일제가 지은 대표적인 수력발전소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해방이후 약 3년간 우리는 북한에게서 전기를 공급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5.10 제헌선거 직후 북한은 일방적으로 전기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때문에 남한지역은 한순간에 암흑천지가 되어버렸습니다.

 

- 전기가 절실해지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일방적인 단전으로 전국이 암흑천지가 되자 미군정은 발전설비를 실은 선박 두 척을 긴급히 공수해와 인천과 부산에 각각 한 척씩 두고 발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때 전기에 대한 절실함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알아보겠지만 이승만 대통령도 우리나라는 공업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 전기가 필요했고 고심하던 중 한 귀인으로 부터 원자력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 원자력에 투자하기 시작하다

원자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인재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없는 돈을 아껴가며 보내기도 하고 아니면 미국에 사정을 하여 미국 자금으로 교육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원자력 산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가 원자력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싶다면 이승만의 산업화와 박정희의 산업화을 참조하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