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이승만의 산업화와 박정희의 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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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산업화와 박정희의 산업화

by 개인주의자 2024. 2. 15.

한국 사람들 중에 이른바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 박정희 대통령에 업적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아는 반면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 즉 포항제철 설립,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화학공업 등은 잘 알지만 이승만정부가 시행했던 산업화 정책은 잘 모릅니다.

 

일전에 제가 쓴 박정희의 산업화, 이승만의 토대 위에서 한 것이다에서도 사실 나라를 건국하고 6.25를 막아내고 했던 즉 나라의 기틀을 잡은 측면만을 조명했을 뿐 역시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의 기반이 된 이승만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 그 부분을 논하고자 하며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글로 넘어갑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농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분은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농업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나 이승만 대통령도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한참 6.25 전쟁 중이었던 1952년, 미국은 전후 한국경제재건계획을 담은 네이산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농업 강국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대통령은 이에 반대하며 1953년 4월 전쟁이 끝나면 철강산업 진흥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동시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산업화 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제철소를 짓다

우리는 포항제철의 건립사는 잘 알지만 이승만대통령의 제철소 건립사는 잘 모릅니다. 이승만대통령 또한 미국에서 공부하며 철강산업이 산업의 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철소를 건설하고자 했었고 그 의지는 1956년 인천에 있던 대한중공업공사에 제강공장이 건설되는 것으로 결과를 맺습니다. 그 공장이 현재 인천에 있는 현대제철입니다.

 

인천의 현대제철

 

 

이승만 정부때 짓고 운영했던 제철소 기술자들이 포항제철을 짓다

이승만 정부 때 인천에 제철소를 짓고 운영했던 기술자들도 포항제철 건립에 참여합니다. 물론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고배철강에서 많은 자문을 해주고 감독을 해주었지만 당시 우리 기술자들도 참여하여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의 초석을 다지다

현재 우리가 저렴한 값에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원자력발전의 초석이 이승만정부 때 만들어집니다. 때는 1956년 Walk Lee Cisler(1897~1994 미국 엔지니어및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설립)이 이승만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Cisler - 대통령 각하! 우라늄 1g이면 석탄 3톤의 에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니지지만 원자력은 사람 머리에서 캐는 에너지입니다.

 

이승만 - 그거 지금 시작하면 몇 년 뒤에 써먹을 수 있나?

 

Cisler - 한 20년쯤 걸릴 겁니다.

 

이리하여 그때부터 원자력발전기술을 키우기 위해 학생들을 미국으로 국비유학을 시킵니다.

 

 

인재를 키우다

인재를 키우려면 좋은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미국이나, 서독 같은 기술력이 대단한 나라에 유학 보내는 방법인데 문제는 당시 우리나라는 개인이나 국가나 너무나 가난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승만대통령은 미국을 설득하며 50명을 앉혀놓고 가르치는 것과 51명을 앉혀놓고 가르치는 게 뭐가 다르냐? 우리 인재들을 교육시켜 달라고 했고 덕분에 우리 인재들은 미국의 국비유학으로 교육받습니다. 위에 원자력발전을 위한 인재들도 그렇게 교육받습니다.

 

산림녹화의 기초를 놓다

본격적인 산림녹화는 박정희 정부 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산림녹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산을 벌거벗게 만든 원인부터 해결해야 가능합니다. 우리 산이 발가벗겨진 이유는 바로 땔감입니다. 당시는 전 국민이 산에 있는 나무로 난방을 하고 밥을 지었기 때문에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누구나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와야 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태백 탄전지대의 석탄을 캐서 땔감으로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운송수단입니다. 태백에서 수도권을 철도로 잇기 위해 영암선 철도가 건설됩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정부가 태백산 종합개발을 통해 더욱 많은 석탄을 캐내려는 계획을 만들고 실행했습니다. 이 계획의 실행은 이승만의 영암선철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산림녹화 과정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기초를 놓다

이승만정부는 대통령령으로 부흥부 산하에 산업개발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착수합니다. 외국에서 유학을 마친 전문가들을 총동원한 끝에 드디어 1959년 1월 (1960 ~ 1962) 3개년 개발계획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바로 뒤에 이어진 4.19로 이승만대통령이 하야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이 계획은 장면정부를 지나 5.16 쿠데타로 집권을 한 박정희 정부로 계승되어 이것을 토대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재탄생됩니다.

 

이승만은 모든 면에서 진보적이었다

이제 제발 진짜 진보를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흔히 좌파들은 자, 타칭 진보라고 하는데 저들은 철 지난 공산주의 사상을 고수하는 오히려 수구꼴통집단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승만, 박정희 두 분이 진정한 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