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이승만의 사람들 - 맥아더 장군 2 - 두 사람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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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사람들 - 맥아더 장군 2 - 두 사람의 교제

by 개인주의자 2024. 2. 19.

저번 포스팅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인간관계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주제로 포스팅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을 쓴 이승만의 사람들 - 맥아더 장군 1 - 두 사람의 만남을 읽어보시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아시게 될 것이며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이 포스팅의 주된 목적은 맥아더 장군이 살신성인으로 6.25전쟁에 임하여 지휘한 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두 사람이 만난 인연이 있었고 그 후 이승만대통령의 많은 작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편 마지막에 한국친우회에 있던 맥아더 장군의 장인으로부터 맥아더 장군을 소개받은 이후 두 사람은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편지로, 전보로 많은 의견교환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이승만은 맥아더뿐 아니라 맥아더의 아버지와도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맥아더와 이승만, 절친이 되다

 

두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인에 당시에는 드문 강력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맥아더와 이승만이 만나기만 하면 자신이 질투가 날 정도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남자임에도 서로 끌어앉고 다정한 연인들처럼 속삭이기도 했을 정도로 친했다고 합니다.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계속 이야기 했던 내용은

 

1. 한국을 도와주고 독립시키는 것이 미국에도 유리하다.

 

이승만은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하여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일본이 아시아지역에서 급속도로 팽창하여 태평양 패권을 두고 미국과 전쟁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 결실이 미국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Japan inside out)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그렇게 팽창하여 미국을 공격하기 전에 한국의 독립을 도와주고 독립시키면 한국이 일본을 막을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 공산주의 국가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

 

세계 2차 대전에서 당시 소련과 미국은 연합국에 속해서 같은 편이었습니다. 또한 미국은 아직 공산주의에 대해 잘 몰랐고 경각심 또한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해방 후 미군정의 하지장군이 이승만보고 계속 좌우합작에 참여하라고 강요했던 것입니다. 물론 하지도 위에서 방침을 내려보내니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탄압하는데 안 싸우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맥아더는 미국 국내에서 연설할 때 이승만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합니다.

 

평화주의와 그 동조자 공산주의가 미국을 둘러싸고 았다. - 반공
한국인들이 죽음의 비명을 지를 때 누가 이들에게 귀를 기울였는가 - 반일본

- 1932년 피츠버그 대학에서 맥아더 -

 

즉 이승만이 했던 이야기를 연설을 다니면서 해서 우리의 독립운동도 도와줬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때 온 맥아더

 

건국식에 온 맥아더

 

금동향로 증정

맥아더의 아버지도 역시 유명한 미국의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1905년 러일전쟁 때 전세를 살피기 위해 조선에 방문합니다. 이때 고종이 강대국의 장군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을 하는데 당시 조선의 국보급 향로였습니다. 이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 아버지 맥아더는 집에 전시실까지 만들어 전시해 놓고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했었습니다.

 

아들 맥아더도 역시 이 향로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 자신이 필리핀에 주둔해있을 때 그것을 필리핀까지 가져와 자신의 막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이 전열을 가다듬을 때까지 잠시 혼란한 상황에서 맥아더가 필리핀에서 다급히 쫓겨 나올 때 그 향로를 태평양 바다에 빠뜨리고 잃어버립니다.

 

그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 한다는 말을 들은 이승만은 전군을 동원하여 전국을 뒤져 비슷한 향로 세 개를 구합니다. 이것을 잘 포장해서 대한민국 건국 때 온 맥아더에게 증정하고 그것을 본 맥아더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이것이 장군을 향한 한국인들의 마음입니다. 코리아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인사합니다.

 

 

 

 

 

뉴욕타임스 인터뷰

자기의 오랜 친구였던 이승만이 나라를 세운 것도 기쁘기도 하거니와 잃어버려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비슷한 금동향로를 세 개나 받은 맥아더는 건국식을 취재하러 온 언론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한국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침공을 받는다면, 나는 캘리포니아를 방위하는 것처럼 한국을 방위할 것 입니다.

1948년 8월 15일 맥아더 - 이호목사 강연 참조

 

라는 말을 했고 뉴욕타임스는 당시 기사 아랫부분에 "이날 맥아더가 너무 감정적이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자 뉴욕타임즈 기사

 

 

트루먼 대통령의 한국지원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다

이후 악 1년 10개월 뒤 한국전쟁이 터지자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지원을 가부를 두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그중 군인에게는 맥아더에게 자문을 구하는데요. 맥아더는 빨리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자문해 줌으로 해서 트루먼 대통령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맥아더는 총사령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며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이후 평양까지 탈환했을 때 그곳을 아무 조건 없이 이승만정부에 양도합니다. 사실 미국내에서는 우리가 탈환하고 왜 아무조건없이 그냥 양도하는가? 하는 말이 있었지만 맥아더는 그렇게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해방에 관해,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참전에 관해 이승만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이 사실들을 알았을 때 정말 놀라웠고 역시 세상에 공짜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