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박정희의 10월 유신, 과연 불가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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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10월 유신, 과연 불가피 했는가?

by 개인주의자 2024. 1. 10.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박정희의 10월 유신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습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은 좋았는데 10월 유신은 잘못한 거라는 둥, 여러 가지 말이 많습니다. 일단 여기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10월 유신은 불가피했던 것이고 산업화와 10월 유신은 한 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그러한지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판단할 때는 항상 시대적 상황을 보고 하자.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 또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아주 냉정하게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시대적 상황을 무시한 채 그 사건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상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대상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10월 유신의 국외적 시대상

10월 유신이 발표된 때는 1972년 10월 17일입니다. 당시 국제정세가 급변하며 우리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공산진영과 자유진영 간에 대립과 전쟁 속에서 생겨난 나라이면서 두 진영이 한반도에서 3년간 전쟁을 했던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었고 우리의 국제적 의의는 공산진영에 맞서는 자유진영의 최전선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중 데탕트가 실시되면서 중공이 중국이 되고 미국과 사이가 좋아지면서 우리나라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60년대 말부터 미중데탕트, 미국의 베트남전 고전 등으로 인한 북한의 도발이 심각해지고 특히 닉슨독트린으로 인해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국가들이 하라는 연설과 함께 주한미군의 철수가 거론되고 특히 키신저는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중국에게 내어줄 것 처럼 말하고 다니면서 우리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10월 유신의 국내적 시대상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받은 자금으로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습니다. 포항제철은 1968년 완공되어 생산에 들어갔으나 중화학공업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안보가 불안해지자 우리 손으로 무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정희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김대중과 대통령직을 두고 선거로 맞붙는 상황에서 자신이 물러나면 김대중 또는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 확실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아시다시피 중화학공업화에 반대하며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드러누운 사람들이었고 특히 김대중은 대중경제론을 강조하며 농업과 경공업이나 잘하자고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둘 중에 한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중화학 공업화는 중단되어 경제개발뿐 아니라 무기개발도 못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측근들의 권유로 인해 1972년 10월 27일 10월 유신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독재라고 비난받는 10월 유신의 기초가 되는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의 찬성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평균 90%가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게 과연 독재인지 또 잘 모르겠네요.

 

 

10월 유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한국이 있었을까?

10월 유신으로 어떻게 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거침없이 중화학 공업화와 수출산업화를 진행해 나갑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박대통령이 암살당하여 박정희정부가 끝날 때까지 오일쇼크를 두 번이나 견뎌냈습니다. 이 오일쇼크가 매우 심각했던 것이 그 당시 우리 경제는 걸음마 단계였으므로 그 기반이 매우 약했고 또 지금처럼 여러 산업이 골고루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석유화학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오일쇼크는 성장하고 있던 우리 경제를 완전히 망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버텨낸 것은 바로 유신체제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구체적으로 쓰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는 결코 본인의 권력욕과 영달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여러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한 기간이 정확하게 유신 이후 약 7년입니다. 그전에는 직선제로 인한 국민투표로 당선된 것이므로 독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