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박정희의 산업화, 이승만의 토대 위에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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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산업화, 이승만의 토대 위에서 한 것이다

by 개인주의자 2023. 12. 28.

박정희의 산업화와 이승만의 토대

현재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함은 많이 알고 인정하지만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승만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도 많거니와 이승만대통령이 해놓은 것을 토대로 박정희의 산업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먼저 이승만이 해놓은 일 중에 어떤 것들이 박정희의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을까요? 첫번째로 건국을 했습니다. 건국을 하되 군주제 국가도 아니고,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 바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나라를 건국한 것입니다.

 

두 번째가 토지개혁입니다. 시중에 북한의 김일성이 토지개혁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하는 유언비어가 도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헛소리입니다. 아니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공산주의라는 것이 빈부격차를 없애기 위해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런데 산업시대도 그렇지만 농업시대는 땅이라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될 생산수단인데 이것을 개인에게 준다는 게 공산주의입니까? 사실 인민들에게 무상분배하는 척하면서 집단농장을 만들었습니다.

 

북한의 집단농장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지주에게 유상으로 땅을사서 유상으로 분배함으로써 개인의 사유재산을 침해하지 않았고 또 농민들 입장에서는 값을 치르고 산 땅이므로 그 소중함은 대단했습니다. 바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토지개혁이었으며 양반들만 땅을 소유하고 있던 상황에서 전 국민을 양반으로 만들어준 사건이었습니다.

 

 

세 번째가 6.25를 막아낸 것입니다. 6.25때 도망갔다느니 오해가 많지만 그것은 전 포스팅 이승만 깨기에서 서술했으니 여기에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낙동강까지 밀려 망할뻔한 나라를 미국에 도움을 청하고 대통령의 역할을 잘해서 결국 막아내고 나라를 지켰습니다.

 

네 번째가 한미동맹입니다. 이 한미동맹으로 전쟁 이후 삼천만 국민들이 미국의 원조로 먹고살 수 있었으며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북한, 중공을 비롯한 공산권에서 더 이상 남침에 대한 기도를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특히 이 한미동맹은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미국과 이제 막 독립하고 전쟁이 끝나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한국이 맺은 대등한 동맹조약으로서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조약이었습니다.

 

 

 

다섯 번째가 바로 원자력발전입니다. 이승만 정부 말기쯤에 원자력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 미국에 도움을 청해 한국의 인재들을 미국으로 유학시켜 원자력 발전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여섯 번째로 문맹을 없애고 초등교육 6년을 의무교육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것과 관련이 되어 있는데 1948년에 나라를 세우고 보니 당시 우리 국민의 학력 수준이 전 국민 중 중등교육 이상 받은 사람이 4%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나라를 운영하는 데 있어 많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제 밑에서 일을 좀 했다고 친일파로 규정하면서 전부 배제한다면 과연 어떤 사람을 데리고 나라를 운영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해방과 건국당시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70%에 달했습니다. 이것을 개선시켜 문맹률을 없애버렸습니다.

 

 

이 문맹률이 중요한 것이 만약 산업화를 하겠다고 외국에서 기계를 들여온다면 당연히 메뉴얼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글로 써 놔도 글을 읽을 수 없다면 기계를 작동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승만정부 시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의 밑거름을 닦는 시기였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박정희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이승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