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7 - 홍위병들의 활동(문화재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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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7 - 홍위병들의 활동(문화재 파괴)

by 개인주의자 2024. 6. 12.

 

 

우리가 흔히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떠올릴 때 대표적으로 홍위병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일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문화재와 문화를 파괴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중국의 문화는 4000년이라는 시간을 후퇴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문화후퇴의 양상은 매우 심각해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소림사 무술도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전수되오던 원형이 아니라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짜집기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홍위병들은 문화재와 문화를 그토록 철저히 파괴했을까요?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시리즈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1 - 마오쩌둥(모택동)과 중국 인민들의 정신세계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2 - 문화(대)혁명의 시작, 해서파관 사건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3 - 해서파관 사건 이후에서 5-16통지까지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4 - 대중동원과 홍위병의 등장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5 - 홍위병들의 구호, 조반유리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6 - 홍위병들의 활동(폭력 및 살인)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8 - 홍위병의 분열과 류사오치의 수난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9 - 홍위병의 종말과 농촌으로 상산하향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10 - 마오쩌둥(모택동)의 죽음과 문화(대)혁명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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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구 입사신(破四舊 立四新)

바로 전 포스팅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6에서 파사구 입사신이라는 마오쩌둥(모택동)의 사상을 설명드렸습니다. 이는 낡고, 늙고, 병들고, 뒤쳐진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낡고, 늙고, 병들고, 뒤쳐진 모든 것에 해당할까요? 문화, 사상, 풍속, 습관 등 네 가지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마오쩌둥(모택동)은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1940년 1월 9일 산시 성 옌안의 토굴 속에 혁명사령부를 만들고 대략 70만명의 당원을 이끌던 마오쩌둥(모택동)은 문화협회 강연의 신 민주주의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문화혁명이 정치혁명에 복무한다는 묘한 말을 남겻다. 공산주의 이론에서 문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문화는 수단이다. 목적은 혁명이다. 그럼에도 마오는 문화혁명이 정치혁명과 통일전선을 이룬다고 말했다.

송재윤, 슬픈 중국 2권 문화대반란, 25page

 

마오쩌둥(모택동)의 인간본성 개조론

마오쩌둥(모택동)은 인간의 본성을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본성개조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면 정말 교만한 태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기자신도 개조가 안되는 판에 무슨 타인을 개조한다는 것입니까?

 

마오는 문화를 바꾸면 인간의 본성까지 교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60년대에 그는 전 인민을 향해서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습관을 척결하라고 요구했다. 낡은 것들을 모두 제거하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마오는 힘들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 송재윤, 슬픈 중국 2권 문화대반란, 25~26page

 

 

인간본성개조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인간의 본성자체를 개조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입니다. 모든 공산주의 국가는 인간본성을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으나 수십년간 처절한 실패만 남기고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통치자 자신도 자신의 인간본성을 개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성과 달리 생활양식과 인식의 개조는 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은 개조가 불가능하지만 생활양식과 인식의 개조는 가능하다는 것은 역사속에서 이미 밝혀졌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예를 들겠습니다. 한반도에는 고조선이래에 수많은 국가들이 등장했다가 멸망했고 그 결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들어섰습니다.

 

따라서 과거 한반도에 등장했던 나라들 중에 한국인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나라는 바로 조선입니다. 우리가 아는 조선의 생활양식과 인식은 원래 우리조상들이 갖고있던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왕조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와 고려시대의 생활상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바로 이것이 생활양식과 인식을 인위적으로 개조시킨 사례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고 작성되면 링크를 달아드리겠습니다.

 

홍위병들의 문화재 파괴의 실상

홍위병들이 파괴한 문화재의 규모는 어느정도 였을까요? 문화(대)혁명 10년동안 베이징의 국가지정 유적지 6843곳 중에서 4922곳이 파괴되었고 산둥 성 취푸에서 공자와 관련된 문화재 6618점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공공도서관도 파괴되었으며 전국 현 단위 이상의 도서관 중 3분의 1이 폐관되었을 뿐만아니라 랴오닝, 지린, 허난, 장시, 구이저우 등에서도 700만 권의 책이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위병들은 심지어 자금성까지 파괴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우언라이가 군대를 급파하여 홍위병들이 자금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재들이 파괴되어 현재는 그 원형을 알 수 없는 것들도 많다고 합니다.

 

예를들자면 소림사 무술이 원형이 아니라고 합니다. 당시 홍위병들에 의해 소림사의 승려들이 모두 축출되어 전승이 끊어졌으며 민간 무술가들을 통해 그나마 복원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옛 중국의 궁중요리들의 조리법 조차 홍위병들에 의해 실전되어 맥이 끊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4000년 후퇴시킨 사건이 바로 문화(대)혁명이었던 것입니다. 이로인해 중국은 아무것도 남지않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옆나라인 우리나라의 의복, 음식, 여러 무형문화를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자사당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