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2 - 회담 참석 및 농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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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2 - 회담 참석 및 농락

by 개인주의자 2024. 3. 20.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고평가 된 인물인 김구는 처음에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찬성했다가 자신의 권력욕으로 인하여 결국 건국을 반대했습니다. 그 과정은 김구가 철저하게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첫번째 글이었던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1에서는 김구와 김규식이 남북연석회담을 김일성에게 제의하는 부분까지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그 이후를 다루고자 하며 만약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1을 보고 싶다면 빨간 글씨를 클릭하세요. 해당글로 넘어갑니다.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시리즈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1 -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요인회담 제안까지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3 - 김구와 김일성의 의도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4 - 서영해와 성시백의 김구 포섭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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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와 김규식의 남북 요인회담 제의에 북한의 화답

김구와 김규식은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1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1948년 2월 16일 북한의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남북 요인회담을 제의하는 서한을 보냅니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는 바로 응답을 보내지 않고 뜸을 들였다가 3월 25일 평양라디오 방송을 통해 제의에 화답합니다.

 

"통일 문제를 논의하고 통일 정부의 헌법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남쪽의 정당 및 사회단체 지도자들을 평양에서 열리는 연석회의에 초대한다." 라고 화답했다. - 김용삼 이승만의 네이션빌딩 171page

 

 김구와 김규식, 회의 참석을 위해 38선을 넘다

북한으로 부터 남북 요인회담에 대한 화답을 받은 김구와 김규식은 좌익들의 총선방해공작인 제주 4.3 사태가 한창 일어나고 있던 1948년 4월 19일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었고 22일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어가기 전

 

 

회의는 각본대로

김구와 김규식이 참석한 남북협상회의는 소련군정의 레베데프 민정청장이 직접 지휘하며 그 회의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이미 각본처럼 전부 짜여 있었습니다. 즉 김구와 김규식은 각본대로 춤을 춰준 것에 불과합니다. 그 각본은 예를 들어

 

1. 남북한 정세보고는 김일성파, 김두봉파, 허헌파 3개 그룹 대표가 한다. 의견을 교환한 뒤 정치정세에 대한 결정을 채택한다.라고 하여 이미 회의 방향을 정해놨습니다.

 

2. 회의가 열리기 전 이미 회의 결의문이 채택되어 있었습니다. 회의 마지막날인 4월 23일 남북 대표자들은 남조선 정치정세에 관한 결정서, 전조 선 동포들에게 격함, 남조선 단선단정 반대투쟁 대책에 관한 결정서, 미소 양국 정부에 보내는 전조선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요청서 등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이 결의문들은 "연석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김일성에게 조언을 제공할 데 대하여"라는 4월 12일 자 스탈린의 지령을 토씨까지 그대로 베껴 쓴 것들에 불과했습니다.

 

3. 레베데프 비망록에 의하면 만약 김구와 김규식이 자신들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그 대책까지 만들어 놨다고 합니다. 그 대책은

 

"김구와 그의 측근들이 회의를 파탄시키고 퇴장하면 어떻게 하나. '나가라'라고 하며 그들을 미국간첩으로 몰자. 그리고 회의는 계속한다. 김구와 대화를 계속한다. 그들이 소란을 피우면 이 대화는 총선을 반대하는 것인데 왜 퇴장하느냐고 몰아붙일 것."  - 김용삼 이승만의 네이션빌딩 177page ~178page

 

북한의 건국과정에서 소련의 역할을 알고 싶다면 북한, 김일성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을 참조하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글로 넘어갑니다.

 

레베데프 핀정청장 - 가운데 서있는 장교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이 김구와 김규식을 농락하다

회의가 끝나고 김구와 김규식이 남한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김구가 김일성에게 조만식 선생이 이곳에 계시다고 하는데 누리가 내려갈 때 함께 내려갔으면 한다고 요청하자 김일성은 "제가 무슨 권한이 있나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김일성은 소련군정 말대로 그냥 따르기만 하는 꼭두각시였습니다.

 

5월 5일 김구와 김규식은 서울로 돌아왔고 바로 공동명의로 남북협상 성명에 대해 발표합니다.

 

1. 북조선 당국자들은 압록강 수력발전소(수풍댐)에서 전기를 끊지 않을 것.

 

2. 북쪽 수리조합 저수지는 남한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곧 수문을 열 것을 약속

 

3. 조만식 선생은 다음에 남쪽으로 보내도록 할 것

 

4. 김일성이 나(김구)에게 개별적으로 북으로부터의 남침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이것은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

 

1번의 경우 5.10 선거 직후인 5월 14일 북한이 돌연 송전을 중단시켰고, 2번의 경우 저수지의 문이 굳게 잠긴 채 열리지 않았으며, 4번의 경우 2년 뒤 한국전쟁 발발로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김구와 김규식은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철저히 농락당하고 말았습니다.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의 다음이야기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3 - 김구와 김일성의 의도 빨간 글씨를 클릭하시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압록강 수풍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