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기독교와 자본주의 7 - 기독교에서 나온 자본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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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자본주의 7 - 기독교에서 나온 자본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by 개인주의자 2024. 7. 24.

이 시리즈를 마치며 마지막 글로 기독교에서 나온 자본주의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제가 기독교에서 나온 자본주의와 비교하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물신주의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하면 주식이나 땅 투기, 대 자본가의 착취, 자본주의를 하면서 잘 사는 나라들의 식민지 쟁탈전, 과소비 등과 같은 부정적인 면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닌 타락한 자본주의입니다. 즉 물신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신주의는 고대때부터 있어왔던 것으로서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자본주의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이 차이를 알아보면서 기독교와 자본주의 시리즈를 총 정리 해봅시다.

 

 

기독교와 자본주의 시리즈

기독교와 자본주의 1 - 인류의 삶의 질이 바뀌다

기독교와 자본주의 2 - 성경으로 돌아가자

기독교와 자본주의 3 - 칼빈이 해석한 성경의 노동관

기독교와 자본주의 4 - 칼빈이 해석한 성경의 직업관

기독교와 자본주의 5 - 칼빈이 해석한 성경의 재물(연봉, 월급)관

기독교와 자본주의 6 - 칼빈이 해석한 성경의 대부 및 투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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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자본주의를 의도하지 않았다

기독교를 세운 종교개혁자들은 자본주의의 출현을 절대로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칼빈은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에 대한 교재인 기독교강요를 저술하면서 성경이 원하는 기독교인의 삶을 다뤘던 것입니다. 그 성경이 원하는 삶을 산 사람들이 그 삶의 원리에 따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리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이 원하는 기독교 인들의 삶의 원리

1)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이롭게 하라

성경에는 십계명 외에도 수많은 규칙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사회의 구성원들을 속이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1;1

 

또 일하는 노동자에게 내리는 지침도 있습니다.

 

종으로 있는 이 여러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사람으로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 하면서,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골로새서 3;22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타인을 이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2) 노동은 인간의 존재 이유이다

종교개혁 이전의 노동은 단순히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아테네에서도 말그대로 노동은 하위계층이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에서는 잘못을 했을 때 벌로 내리는 것이 바로 노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 노동관은 크게 바꼈으며 새로운 노동관으로 노동을 대하는 새로운 부류가 생겼으니 바로 기독교 인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노동은 인류가 탄생했을 당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창세기 2;15

 

즉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후에 에덴동산을 돌보는 노동을 맡겼다는 말입니다.

 

3) 직업은 소명이다

직업은 각자가 노동을 하는 분야이자 장소가 됩니다. 따라서 아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직업에 맞는 노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동을 하는 분야이자 장소가 되는 직업이 바로 소명이라는 소명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바로 기독교 인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직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 직업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이들은 끊임없이 지식을 쌓고 기술을 개발했으며 결국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이 지식을 쌓고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을 바로 축적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4)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원리로 살다보니 더욱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재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 재물은 하나님 것이다

기독교 인들은 이 세계가 무슨 빅뱅이나 진화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모든 물질들은 바로 창조주의 것이 됩니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노동을 통해 들어온 이 물질은 창조된 세계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재물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허영을 채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사치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재물의 쓰임

하나님은 재물을 버는 나 자신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선에서 누립니다. 그러나 그 재물로 타인도 누리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것도 포함되고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예를들어 병원이나, 도서관 같은 것을 짓는 것도 포함됩니다.

 

또한 공동체에 유익이 될만한 새로운 사업으로 확장하기 위해 투자를 한다든지 또 타인이 공동체에 유익이 될 만한 사업을 시작할 때 투자라는 형식으로 자본을 보태주는 것도 성경의 원리대로 하나님이 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성경적 노동관, 직업관을 가진 사람들이 번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절대로 낭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돈이 점점 많이 쌓이게 되고 이것이 대 자본이 됩니다. 이 대 자본을 성경의 원리에 따라 공동체에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서 공동체가 풍요로워지고 지식수준이 올라가게 되고 선순환이 반복되어 그 사회의 풍조자체가 변하게 되면서 아래 그래프에서 보시듯 세계 GDP 총액이 드라마틱하게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