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3 - 민씨척족의 가렴주구(임오군란)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3 - 민씨척족의 가렴주구(임오군란)

by 개인주의자 2024. 3. 29.

현재 한국의 근현대사는 매우 왜곡되어 있습니다. 조선이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 대해 너무나 잘못 배워왔습니다. 기존에 배워왔던 역사는 조선망국의 역사를 당시 왕과 왕비는 배제한 채 다른 사람에 의해 망했다는 기적의 논리의 역사였습니다.

 

조선은 왜 망했는가? 또 다른 이유를 알고 싶다면

 

조선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유 1

 

조선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유 2를 참조하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여기서는 임오군란 자체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오군란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은 다른 포스팅에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임오군란이 발생하다

1882년 7월 23일(양력) 임오군란이 발생합니다. 이 임오군란은 구식군인들이 일으킨 난으로서 원래 조선에는 훈련도감이라는 군대가 있었습니다. 민씨척족들은 아직 확고하지 않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이 훈련도감을 대폭 축소시켰습니다. 대신 별기군이라는 신식군대를 창설하였는데 이 별기군은 사실상 민 씨 척족의 사병과도 같았습니다.

 

훈련도감은 원래 5영이 있었으나 2영으로 축소되었고 따라서 많은 군인들이 해고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축소된 후 2영에 속해있던 구식군인들은 신식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많은 차별을 받고 있었습니다. 차별뿐만 아니라 봉급이 13개월이나 밀려있었습니다.

 

구식군인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한달치 봉미(쌀)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열어보니 쌀 주머니에 모래가 반이나 있었고 그나마 있던 쌀들도 전부 썩은 쌀이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구식군인들이 난을 일으킨 것이 바로 임오군란입니다.

 

구식군인, 민씨척족을 공격하다

왜 구식군인들이 민씨척족을 공격했을까요? 일단 차별의 발단이 된 신식군대 별기군의 주도자가 바로 민겸호였습니다. 거기다가 군대의 월급을 관장하는 선혜청의 총책임자도 민겸호였습니다. 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민겸호는 주동자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린 후 그를 곧 죽이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칼로 땅을 치며 굶어죽으나 법으로 죽으나 마찬가지니 죽일 사람이나 하나 죽여서 원을 씻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박종인, 매국노 고종, 148page

 

이렇게 대노한 군중들은 7월 23일(양력) 민겸호의 집으로 쳐들어가 순식간에 집을 부수고 평지로 만들었습니다. 민겸호의 집에 얼마나 금은보화와 진귀한 약재들이 쌓여있었는지 황현은 매천야록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금은보화를 모조리 태워버렸는데, 비단과 구슬이 타서 불빛은 오색을 띠고 인삼과 녹용과 사향 등의 냄새가 몇 리 밖까지 풍겼다.

황현, 매천야록(박종인, 매국노 고종, 148page)

 

당시 구식군인

 

 

구식군인, 민비(명성황후)를 공격하다

임오군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은 민비(명성황후)는 "무위영 포 군을 불러 진륙시키면 뭐가 어렵겠는가"라고 말했고 이 소식을 들은 구식군인들은 민비(명성황후) 또한 타도대상에 올립니다.

 

그리고 곧 7월 24일(양력)에 구식군인들은 창덕궁을 습격하여 궁에 있던 민겸호를 죽이고 경기감사 김보현 또한 죽였습니다. 그러나 민비(명성황후)는 한발 늦어 죽이지 못합니다.

 

민비(명성황후), 도망치다

민비(명성황후)는 구식군인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온다는 말을 듣고 살기위해 궁을 빠져나와 도망칩니다. 민비(명성황후)가 도망친 곳은 충청도 장호원에 있는 친척오빠 민응식의 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음 포스팅에서 말씀드릴 박창렬이라는 무당과 처음만납니다. 이 무당이 민비(명성황후)가 궁에 돌아갈 날짜를 예언했고 그 날짜가 신통하게 맞아떨어져 이때부터 민비(명성황후)는 이 무당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됩니다.

 

왜 구식군인들은 민씨척족을 타깃으로 삼았을까?

구식군인들은 민겸호와 더 나아가 민비(명성황후)까지 죽이겠다고 덤볐고 이윽고 민 씨들은 다 죽인다고 하며 이를 갈았습니다. 그 때문에 민겸호와 민창식은 살해당했고 민태호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겸호, 민태호, 민창식, 민규호, 민두호, 민영익, 민치서, 민치상 등 민 씨 집들은 전부 불에 탔습니다.

 

구식군인들과 군중들은 민씨척족과 일면식도 없음에도 왜 그렇게 그들에게 화나있었을까요?

 

그들은 (민비(명성황후)와 민씨척족들이) 매관매직, 세도정치, 외세 끌어들이기 그리고 궁중에서의 푸닥거리와 연회로 흥청망청 국고 낭비를 일삼아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용삼, 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 156page

 

 

 

또한 민씨척족민 씨 척족 이외에도 다른 관리들도 가렴주구가 극심했는데 그것을 조장하는 세력이 민 씨 척족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 씨 척족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쳐야만 벼슬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재물로 벼슬을 산 관리들이 본전을 뽑는 방법은 간단했다. 백성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세금을 부과하여 쥐어짜 내는 것이다.

김용삼, 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 156page

 

이 당시 황현은 민씨척족들이 전국적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서울의 민영주, 관동의 민두호, 영남의 민형식을 세명의 큰 도둑으로 꼽았다. 특히 민영주는 서울의 부자와 거상들의 재물을 갈취할 때 갖은 악행을 가하여 돈을 뜯어냈다. 성질이 너무 거칠고 악독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민 망나니'라고 불렀다.

관동의 민두호는 끝없는 탐욕으로 인해 백성들은 그들 '민 철갈고리'라고 불렀다. 또한 영남의 민형식에 대해 나(황현)는 동서고금에 민형식 같은 놈은 처음 있을 정도다라고 말하겠다. 백성들은 민형식을 악귀라고도 하였으며 때로는 광호(미친 호랑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그가 능히 산 채로 사람을 씹었기 때문이다.

성이 민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탐욕스러웠고 전국의 큰 고을은 대부분 민 씨들이 수령자리를 차지했으며 평양감사와 통제사는 민 씨가 아니면 할 수 없게 된 지가 10년 이상 되었다고 통탄했다.

황현, 오하기문(김용삼, 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 156~157page)

 

이래놓고 고종은 계몽군주, 민비(명성황후)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두뇌싸움을 하다가 일본자객에게 암상당할 때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치고 죽은 훌륭한 왕비라고?

 

그리고 그 계몽군주 고종을 패싱하고 대신 다섯명이 지들끼리 서명하고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제발 말같지도 않은 기적의 논리 좀 그만하자!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시리즈 - 빨간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1 - 매관매직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2 - 가렴주구의 시작(민씨척족의 등장)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4 - 무속과 미신에 미치다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5 - 총애 받은 무당 진령군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6 - 경제정책과 재정관리